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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에 정태춘 선생이 나온다길래 너무 반가웠다.

좀처럼 공중파 방송에 나오지 않았던 그가 자신의 노래와 여태까지 활동들을 정리하고 돌아보기 위함이리라.

또한, 40주년 기념 전국 공연 홍보 목적이기도 하리라고 짐작도 있다.

 

정태춘의 음악을 듣게 된건 누나가 그의 음악들 좋아했기때문이다.

특히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콘서트를 통해 우리에게 잘못을 지적하였다.

얼룩 송아지는 미국 젓소이고 우리의 송아지는 누렁소라는 것이다.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일때는 몰랐는데 가만히 듣고 보니 참말로 그렇다.

우리 소는 누렁 이다.

그는 그렇듯 음악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 시대를 노래했고 부조리에 저항했던 음유시인 이었다.

 

 

 

정태춘 선생의 노래인생은 고난으로 점철되어있었다.

90년 [아,대한민국]을 사전심의제도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사전심의를 받지 않고 발매했다.

[92 장마, 종로에서] 또한 심의를 받지 않았다. 이때문에 그는 불구속 기소된다.

그는 음반심의제 폐지에 앞장섰고 그로인해 많은 고난을 당했다.

불의에 눈감지 않고 저항했던 댓가는 컷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다.

 

 

 

이후 1996년 음반심의제는 폐지되었다.

불후에 명곡에서 몽니, 알리, 자전거탄풍경, 장범준, 서제이, 임태경이 정태춘의 주옥과 같은 노래들을 불렀다.

정태춘의 노래는 정태춘이 아닌 그 누군가가 부른다해도 정태춘 답지는 않다.

그의 노래는 그의 삶과 철저히 연결되어있고 우리는 그것을 알고 그것에 감동 되기 때문이다.

알리가 92 장마, 종로에서를 아무리 절절하게 불러도, 몽니가 그의노래를 샤우팅 하는 노래도 바꿔불러도. 그의 노래는 그가 불러야 감동이된다.

개인적으로는 장범준의 기타와 아련한 아코디언으로 편곡한 [촛불]이 가장 좋았고, 알리가 부른것도 좋았다.

 

 

 

그의 4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음악다큐영화까지 만들어 지는걸 보면 그가 얼마나 이 시대에 영향을 끼친 가수인지 알수있다.

 

 

 

그는 자신에게 음악은 자신의 전부를 담아낸 그릇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전부를 담아낸 음악을 그의 삶의 일부분도 되지 않는 미미한 존재들이 아무리 노래한들 그가 부르는 노래의 감동을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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